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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프롬엉클] 존스 요원의 골칫거리

베를린 작전의 숨은 공로자 존스 요원이 본 솔로


"잘 했어, 존스."


트럭 화물칸에 내려선 나폴레옹 솔로는 배불리 처먹은 뚱뚱한 고양이 같은 얼굴로 말했다. 존스가 트럭을 정확한 순간에 적당한 거리만큼 후진시켜, 적국의 비밀요원을 훌륭히 지뢰밭에 떨구었기 때문에 하는 칭찬이다.


나폴레옹 솔로는 벌써 CIA에서의 필드 경험이 5년에 달하는 요원이었는데 경력이 아주 특이했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일찍부터 입대하여 유럽에서 구르며 불법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다가, 모든 번거로운 절차를 무시하고 CIA의 정식 요원이 되었던 것이다. 애국심이라고는 없는 도둑놈이.


반면 존스는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철저한 배경 조사와 여러 단계의 시험을 거쳐 CIA의 눈에 든 후에도 장기간의 훈련과 수습 기간을 성실하게 마쳤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겠다는 부푼 마음으로 필드에 나와 보니, 뺀질거리는 낯짝을 한 이 전직 도둑이 떡하니 파트너이자 선임이었다. 얄밉게 빙글빙글 웃으면서 존스에게 매일같이 운전, 장보기, 안전가옥 청소하기, 총기 손질하기, 호텔 예약하기, 정부의 집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 않는 타겟 기다리기 따위의 임무만 주는.


존스를 따돌리고 혼자서 어느 공주님의 목숨을 구하거나, 국제적 범죄조직의 본거지에서 기밀 서류를 털어오거나 하는 멋진 일을 마친 후면, 솔로는 엉뚱한 장소에서 목줄 묶인 개처럼 멍하니 기다리던 존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안, 나는 혼자 일하는 게 편해서.'


원래부터 이런 인간인 탓에, 솔로와 달을 넘겨 함께 일한 파트너는 존스가 처음이었다. 아마 존스가 의욕 넘치는 신참인 데다가 비교적 무던한 성격 탓에 솔로를 잘 참아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전에도 샌더스가 몇 번인가 솔로를 다른 요원들과 함께 일하게 시킨 적이 있긴 했지만, 솔로에게 파트너란 꼭 필요할 때 잠깐 손을 빌려 이용해 먹는 존재에 불과했다. 존스는 솔로가 계속 혼자 일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솔로를 위해서도, 존스 자신을 위해서도.


이번에 이 삐걱거리는 요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 서슬퍼런 동베를린 침투였다. 이번에는 드디어 첩보요원다운 일을 하는가 두근두근 기대하는 존스에게 솔로는 웬 허접한 지도를 하나 던져 주었는데, 붉은 색으로 눈에 띄게 X표시가 된 건 동베를린이 아니고 장벽 이쪽의 극히 평화로운 어느 지점이었다.


"이게 뭔데요?"


"뭐긴 뭐야. 자네가 트럭을 준비해서 대기하고 있을 장소지. 1초라도 늦으면 안 돼. 나 뿐만 아니라 무고한 아가씨의 생명이 함께 걸려 있다고."


솔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진지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 내가 아직도 신출내기인 줄 아나. 솔로의 연기에 속지 않게 된 지도 꽤 됐다. 존스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중얼거렸다.


"트럭이라구요. 또 운전...... 또 대기......"


저항의 기미를 눈치챈 솔로는 더더욱 요란하게 눈을 깜빡이며 꿀 바른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아니야. 갈고리총이 준비되어 있어. 그걸 진짜 CIA 요원만이 할 수 있는 숙련된 솜씨로 정확한 위치에 쏴 줘야만 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자네 훈련받을 때 어떤 화기로든 사격 솜씨는 최고였지, 굳이 연습이 필요할까?"


"필요 없어요. 왜, 아주 걸음마부터 다시 연습하라고 하지."


비꼬아 보았지만 솔로는 존스의 건방진 태도가 아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는 시늉을 했다. 존스가 무슨 어깃장을 놓아도 그게 솔로에게 닿으면 깊은 물에 던진 조약돌처럼 쏙 빠져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아 참."


솔로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또 준비해 줘야 할 중요한 물건이 있어."


"뭡니까?"


"안가에 쌀하고 마늘 양파 등등은 있던데 트러플이 없더라."


"아니 시발."


존스는 그만 선임에게 대놓고 욕을 하고 말았다


"감자나 케찹도 아니고 갑자기 트러플을 어디 가서 구해요?"


그러자 솔로는 짐짓 달래려던 태도를 싹 걷어치우고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존스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구해 와. 하얀 걸로."


솔로의 끔찍한 습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가장 심한 건 멋지고 중요한 일을 매번 독차지하려고 든다는 것이지만, 나머지 습관들도 성가시긴 마찬가지였다. 비상시가 아닌 한 반드시 맞춤 정장과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어야 했고, 머리를 완벽하게 빗어넘기고 향수 냄새를 풍기는 상태가 아니면 아침에 방에서 나오려 하질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임무를 마친 후에는 꼭 값비싼 무언가가 들어간 걸 먹으려고 드는 것이다. 그럴 때 솔로가 사 주거나 해 준 음식은 백이면 백 천상의 맛이기는 했......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여튼 솔로가 끔찍한 버릇을 수백 가지나 가지고 있다는 게 요점이다.


존스는 요즘도 잠이 잘 안 오는 밤이면 나폴레옹 솔로를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에 팽개치고 시원하게 광소를 터뜨리며 혼자 발걸음도 가벼웁게 돌아오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만이다. 솔로가 아무리 재수 없어도 임무는 신성한 것이었다. 샌더스 부장님이 빼 오라고 한 인물은 반드시 빼 와야 했고, 그 와중에 솔로가 죽어 버리면 임무도 실패다.


그래서, 다시금 되새기건대, 결코 솔로가 예뻐서가 아니라 샌더스 부장님의 명령을 완수하려면 불가피한 일이었기 때문에, 존스는 착실하게 제 시간에 트럭을 몰고 출발해서 솔로가 X자를 그려준 장소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늦은 건 존스가 아니라 솔로였다. 무려 8분하고도 40초 가량이나 늦은 솔로가 장벽 너머의 건물 위에 나타나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냈을 때, 존스는 갈고리를 어김없이 쏘아서 솔로가 있는 옥상에 걸었다. 건물과 트럭 사이, 솔로와 존스 사이가 튼튼한 갈고리밧줄로 연결되었다. 이제 그걸 타고 솔로와 타겟이 미끄러져 내려오기만 하면 구출 작전은 성공이다.


솔로에게는 말 안했고 앞으로도 말하지 않겠지만, 존스는 낮에 (트러플을 구해다 놓은 후) 이곳을 철저히 답사했고 삼각법을 이용해 실수 없는 임무 수행을 시뮬레이션했다.


반면 솔로는 절대,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전 답사를 하거나 연습을 하는 법이 없었다. 불성실의 화신이다. 그러다 언젠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총알 구멍이 날 게 뻔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드디어 고맙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난 절대 그 놈 시신 수습 안 해줄 거야. 상쾌한 마음으로 버리고 올 거라고. 존스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에 대고 맹세했다.


존스가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솔로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미스 텔러라나 하는 이름의 타겟을 안고 줄에 몸을 맡겼다. 줄은 예상대로 별 어려움 없이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한다. 이 갈고리줄은 훌륭한 물건이긴 했지만 버틸 수 있는 최대 하중이 200kg에 불과했다. 솔로는 매일같이 뭐 비싼 걸 쉴 새 없이 처먹어서 꽤 무거우니 빼 와야 할 아가씨가 저렇게 가시처럼 마르지 않았으면 위험했겠지! 그나마 다행이네, 하고 존스가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줄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멀리서 대충 봐도 2미터는 족히 될 만한 남자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솔로와 타겟 뒤로 줄에 매달렸던 것이다. 솔로가 또 예정에 없던 사냥개를 뒤에 매달고 왔구만. 솔로에, 타겟에, 사냥개까지, 이번에야말로 최대 하중을 가뿐히 넘긴 것 같았고 존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줄 아래는 촘촘히 깔린 지뢰밭이다. 거기 떨어지면, 운이 좋아서 지뢰가 터지지 않는다 한들 동독 수비대가 솔로의 비싸디 비싼 맞춤옷에 총알구멍을 백 개 내기 전에 솔로를 주워 올 방법이 요원했다. 그러나 존스가 조바심을 낸 건 불과 몇 초 동안이었고, 애석하게도 무사히 장벽을 넘어 날아들어오며 솔로는 경쾌하게 소리쳤다.


"존스, 후진해!"


출발 신호를 받은 경주마처럼 존스는 지체하지 않고 시키는대로 했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줄이 느슨해진 덕에 솔로 뒤를 따라오던 추격자는 점점 미끄러져 내려오는 속도가 느려지다가 장벽 너머에 혼자 대롱대롱 걸렸다.


솔로는 자비없이 추격자가 매달려 있는 줄을 딱 끊어버렸고, 존스는 지뢰 터지는 소리에 대비해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저쪽도 운이 좋은지 당장 지뢰를 밟은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한 솔로는 휴, 하고 과장된 한숨을 내쉬더니 웃음 섞인 목소리로 칭찬했던 것이다.


"잘 했어, 존스."


나폴레옹 솔로의 명목상의 파트너로 반 년 가까이 구르고서 존스가 터득한 것 중 하나는, 솔로의 칭찬이 진심인지를 구별하는 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존스가 첫 3개월 동안 솔로에게 받은 칭찬은 죄다 냉소적이거나 반어적이거나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는 입에 발린 소리를 잘 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아무 숨겨진 의도 없이 진심인 경우는 또 드물었다.


솔로가 존스에게 처음으로 진짜 칭찬을 한 것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 평의회를 날리려 들었던 테러범을 존스가 떡이 되게 두들겨 패 잡았을 때다. 그 과정에서 존스도 반쯤 떡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존스가 이겼다. 솔로의 예측이 (또!) 빗나가 존스가 반나절동안 지루하게 지키던 엉뚱한 문으로 테러범이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에 트럭 운전대를 잡고 있는 존스를 치하할 때의 솔로는 그 때의 반만큼도 눈을 반짝이고 있지 않았지만, 이것 역시 진짜 칭찬이었다.


그러니까 몇 달 동안의 진통 끝에 조금은 익숙해져 있었다는 말이다. 존스는 솔로에게, 솔로는 존스에게. 그리고 그럴 만하니 작별이었다.


동서 베를린 사이에서 소란스러운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부터 솔로와 함께 나갔던 샌더스가 어디엔가 솔로를 남겨두고 혼자서 돌아왔을 때 존스는 즉시 어렴풋이 짐작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예고 없이 안녕이라니 조금 놀라기는 했다.


"다른 파트너와 작전을 나간다구요? 솔로가요?"


"그래, 자네가 매일같이 조르던 일이잖아. 자네는 이제 랭리로 돌아가 대기해. 소원대로 좀 더 상식적인 파트너를 만나게 될 거야."


샌더스는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존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존스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솔로의 새 파트너는 누굽니까?"


"기밀이야."


샌더스는 칼같이 자르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례적으로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얼굴 근육이 비틀리며 더 찌그러져서 무서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분명히 웃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샌더스의 드문 웃음은 언제나 국제적 음모와 크고 작은 골칫거리와 필연적 소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큰일이네. 나니까 봐줬지 누가 솔로하고 파트너를 해. 새 파트너가 누구든 분명히 며칠 못 가서 솔로를 잡아먹으려고 들 걸.


존스는 착잡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막상 고대하던 순간이 닥쳐 솔로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속시원하다는 생각보다 솔로 걱정부터 했다는 것 때문에 이후 사흘 밤낮을 더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가 이 때 한 추측, 즉 솔로의 새 파트너가 솔로를 잡아먹으려 들 거라는 추측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옳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꽤 한참 후의 일이 될 것이었다.



(2015.11)

트위터 @trinketbo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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