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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프롬엉클/일리야솔로] 메달 수여식(上)

왠지 동계올림픽 간 일리야솔로

※ 이 글에 언급된 그 무엇도 실존하는 사건이나 인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가상의 나라에서 열린 가상의 올림픽.

※ 이 정도까진 전체공개도 괜찮다고 보지만 하편까지 쓰면(써야 말이지만) 19금일 텐데... 어렵다 멀다 19금의 길





"냐아옹."


나폴레옹 솔로는 야릇한 소리를 냈다. 일리야의 귓가에 입술이 닿을락 말락 스치도록 바싹 붙이고서. 축축하고 따뜻한, 살짝 사향 같은 향기가 풍기는 솔로의 숨결이 일리야의 귓바퀴를 따라 흩어지며 간지럽고 오싹한 감각을 남겼다.


일리야는 이 사악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찰싹 달라붙어 오는 솔로를 억지로 떼어냈다. 하지만 너무 멀리는 아니고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지금 일리야는 화를 내고 있다. 화를 내야 했다. 그러니까 그만 부벼대라고, 이 요망한 고양이.


잠깐만. 일리야가 평소에도 솔로를 '고양이' 같은 호칭으로 부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솔로도 제아무리 수치를 모르는 인간이라지만 아무 때나 야옹거리고 부비적대지는 않는다. 지금은 솔로가 정말 고양이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게다가 그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럴싸하게 어울렸기 때문에 일리야도 솔로도 거기에 휩쓸린 감이 있었다.


요 며칠 솔로는 이번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고양이 옷을 입고 팔자에 없는 자원봉사자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꼴이지만 이 또한 세계 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임무의 일환이었다.


"지금 이게 마스코트가 할 짓이냐? 어떤 마스코트가 그 따위로 외설스럽게 구느냔 말이야!"


일리야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나폴레옹 솔로는 결코 그 정도로 질책으로 주눅들 인물이 아니었다.


"이 고양이가 그렇게 구는 건 말야, 아마도 상대가 영광스러운 바이애슬론 메달리스트이기 때문 아닐까?"
 

솔로는 커다란 고양이 앞발 모양의 장갑을 낀 손으로 고양이가 수염을 다듬듯이 자기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발바닥에 제법 폭신하게 생긴 분홍색 젤리마저 달려 있다. 요즘 운동을 하느라 바빠서 하루이틀 면도를 게을리한 일리야의 까끌한 얼굴에 뺨을 부벼댄 탓에 따끔거리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흥분해서 아래에 슬슬 힘이 들어가고 있는 잘생긴 메달리스트란 말이지."
 

솔로는 일리야의 상태를 눈치 챘는지 놀리듯 덧붙였다.
 

"헛소리 마. 뚱뚱한 고양이 분장을 한 꼴을 보고 누가 세우냐."
 

민망해진 일리야는 일단 잡아떼고 봤다.
 

솔로가 입은 고양이 옷은 과연 토실토실했다. 가슴과 배 부위, 그리고 네 발에만 흰 털이 있는 검은 고양이다. 머리에 써야 하는 커다란 고양이 탈은 벗겨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탈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철칙이었지만 솔로는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이날 밤에도, 솔로는 메달 수여식이 연달아 벌어지느라 사람이 몰려 시끌벅적한 메달 플라자의 무대 뒤 구석에서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거추장스러운 고양이 탈을 벗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답답해서만은 아니었다. 선수들과 노닥거릴 때 자신의 조각 같은 얼굴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일리야가 한 무리의 선수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수다 떨고 있는 솔로를 찾아냈을 때, 솔로는 탈을 벗어서 옆구리에 끼고 머리에는 큼직한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두 귀에 보송보송하게 새까만 털이 덮였고 귀 안쪽은 분홍빛이다. 솔로는 일리야 덕분에 즐거운 다국적 친목 시간이 끝장난 지금까지도 아직 그걸 벗지 않았다.


자기의 곤란한 아랫도리 사정으로부터 화제도 전환할 겸, 일리야는 우라지게도 솔로와 잘 어울리는 까만 고양이 귀를 툭 건드렸다.


"이 머리띠는 또 어디서 난 거야?"


"운동도 좋지만 가끔 주위를 좀 둘러보게나, 일리야. 지금 올림픽 스토어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라네. 이번 올림픽 마스코트가 섹시한 턱시도 고양이이다 보니 인기 만점이야. 이건 말비네가 나 쓰라고 준 거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비네가 누구야?"


"으음, 자네가 갑자기 달려들어 날 납치하기 전까지 나랑 이야기 나누고 있던 핀란드 선수."


잠깐 주춤했던 일리야의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탈을 벗고 선수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꼴을 들키면 당장 마스코트 노릇도 잘릴 텐데!"


"잘리면 뭐 어떤가, 내가 진짜 자원봉사자도 아닌데. 그리고 자를 수 없을 걸. 우리는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고. 즐겨, 일리야."


솔로는 오만하고도 불성실하게 말했다.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는 이번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첫번째 협박 편지가 도착한 것은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폭탄을 설치하겠다니! 모두들 처음에는 짓궂은 장난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한 달 간격으로 편지는 꼬박꼬박 도착했고, 최근에 부쩍 디테일해진 편지 내용이나 들키지 않도록 단서 한 점 없이 편지를 보내오는 솜씨를 종합했을 때 마냥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서게 된 것이다.


용의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속을 끓이던 조직위원회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곡절 끝에 엉클도 이 일에 한몫 끼게 되었다. 익명의 협박범이 정말로 자기가 장담한 것 같은 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협박범은 조직위원회나 선수단, 스태프, 자원봉사자, 기타 등등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 만한 위치에 있을 것이 유력했다.


그래서 솔로와 개비, 일리야, 그리고 다른 여러 엉클 요원들도 내부 인물로 위장해 이 대형 행사의 곳곳에 잠입하게 되었다. 개비는 조직위원회에 한 자리 꿰찼다. 솔로는 고양이 마스코트였다. 그리고 일리야는 대회 직전 부상으로 불참하게 된 작은 나라 선수를 대신해 바이애슬론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솔로는 그 소식에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다.


"대충 해, 일리야. 자네가 아무리 곰과 같은 힘과 집요한 승부욕을 가졌어도 전문 선수들 틈에서 될 말인가. 기권해도 뭐라 안 할 테니."


솔로는 일리야의 약을 올렸고, 일리야도 질세라 고양이가 된 솔로의 꼴이 얼마나 웃긴지 꼬집었다. 그리고 오로지 솔로가 틀렸음을 입증하겠다는 일념으로 역주한 끝에 일리야는 정말 순위권에 드는 기염을 토해버렸다. 마침 스키도 사격도 전문인 일리야에게 바이애슬론은 꽤나 해 볼 만한 경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유력한 메달권이었던 선수 두엇이 부상과 코스 착각으로 기권 및 실격되는 운까지 따라주는 바람에, 방금 수여받은 동메달이 일리야의 패딩 점퍼 앞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솔로는 메달 수여식을 구경하러 오지도 않았다. 시상대에 선 일리야는 매의 눈으로 몰려든 인파를 훑었다. 그 인파 속에 '우리가 여기 테러범 잡으러 왔지 정말 메달 따러 왔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는 곱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개비는 있었지만, 수상한 테러범도, 고양이 탈을 쓴 솔로도 보이지 않았다. 경기를 하느라 오늘은 반나절 꼬박 솔로를 보지 못했는데.


불길한 예감을 느낀 일리야는 시상대를 내려오자마자 사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선수들과 노닥거리는 솔로를 발견한 것이다. 고양이 탈을 벗은 솔로를 쳐다보는 선수들은 이미 귀여운 마스코트를 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당장 솔로와 함께 기꺼이 고양이 둥지로 뛰어들 태세들이었다.


눈이 뒤집힌 일리야는 말로 할 것도 없이 다짜고짜 솔로를 낚아채 둘러메고 쿵쾅거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꼼짝 못하고 어깨에 얹혀 가는 솔로가 뭐라고 항의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일리야는 분노로 귓구멍이 틀어막혔다. 그는 그저 선수 노릇도 마스코트 시늉도 잠시나마 집어치울 수 있는, 조용하고 격리된 장소가 필요했다. 마침 메달 수여식도 다 끝나가는 밤 시간이어서 빈 락커룸이 눈에 띄었다.


일리야는 그곳으로 들어오자마자 솔로를 내려놓고 문을 잠근 후 솔로의 방만한 임무수행 태도를 추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튀어나온 본심은 이것이었다.


"내 메달 수여식도 보지 않다니!"


"봤어."


솔로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했다.


"수여식에서 마스코트를 보지 못했나?"


"마스코트는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 너는 없었다!"


"모두 다 탈을 쓰고 있는데 난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탈을 썼든 이불을 뒤집어 썼든 알 수 있다!"


일리야는 말로 설명이 어려워서 애매한 손짓으로 허공에 곡선을 그리다가, 결국 양손을 뻗어 푹신한 고양이 옷으로 둘러싸인 솔로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포동포동하게 안을 댄 고양이 옷 때문에 사실 솔로의 엉덩이라기보다는 스펀지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일리야는 다른 백 마리의 고양이들과 나폴레옹 솔로 고양이를 한 눈에 구별할 수 있었다.


"이런... 이런 몸을 가진 건 너밖에 없어!"


"칭찬 고맙네."


솔로의 여유는 정말이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장이 터지게 할 만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희롱에 놀란 눈치도 전혀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를 내준 채 솔로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운동선수 노릇이 꽤 적성에 맞나 봐. 내가 메달 수여식을 안 본 게 그렇게 섭섭한가? 꼭 진짜 선수처럼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 줄 몰랐네. 내 불찰이야."


솔로는 잡아뗄 뗀 언제고 물 흐르듯 불참 사실을 인정하고서도 여전히 뻔뻔했다.


"그럼 늦게나마 마스코트답게 축하해 줘야겠군."


미안해 하는 대신, 솔로는 미소를 지으며 일리야의 목에 팔을 걸쳐 바싹 끌어당기고 애교 부리는 고양이처럼 볼을 부비더니 급기야는 귓가에다 대고 울었던 것이다. 야릇하게 끈적끈적 감기는 소리로 꼬리를 끌며 냐아아옹, 하고.



트위터 @trinketbo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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