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엔터프라이즈에서 개발한 신형 홍채 인식 장치는 성능이 뛰어나서, 허리를 굽혀 눈을 어색하게 부릅뜬 채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클락이 위치에 서자 기계가 자동으로 사용자의 키에 맞춰 높이를 바꾸고는 알아서 눈을 찾아 스캔하는 과정이 1초도 지나지 않아 매끄럽게 완료되고 회의실 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휙 한 줄기 바람이 불어닥쳐 클락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때아닌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브루스 웨인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심각한 얼굴로 신문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 신문의 1면을 차지한 장본인이자 진로상담 당하는 학생처럼 브루스 곁에 앉은 배리 앨런은 클락을 향해 오른손을 반갑게 들어올렸는데,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빨간색 다트가 하나 끼어 있었다.


  "안녕, 클락."
  "안녕, 배리, 브루스."


  클락의 등 뒤에서 회의실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배리는 앉은 자리에서 반대편 벽에 걸린 다트판을 향해 다트를 던지더니, 다음 순간에는 휙 하고 다트판 앞에 나타나 방금 자기가 던진 다트를 공중에서 채어 잡았다. 극소수의 사람만 할 수 있을 특별한 방식의 다트 게임이었다. 그 통에 또 한 번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일어났고, 브루스는 펄럭거리며 접혀버린 신문을 짜증스럽게 다시 펼쳤다.


  "쓸데없이 그러지 마라. 사람들 놀란다고 몇 번을 말해. 어제도 필요 이상으로......"


  브루스의 심기가 살짝 불편한 것은, 어제 센트럴 시티의 은행에서 발생한 강도 겸 인질극 사태 때문에 플래시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중심가를 가로질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유리창이 꽤나 깨지고 행인들이 놀라 주저앉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들 사람들이 한밤중에 열받은 배트맨 만나는 것보다 놀라겠어요? 그 방면에선 내가 한 수 접어드려야지."


  한 마디도 지는 법 없는 배리가 어느 새 제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클락은 이번엔 눈에 힘을 주고 집중해 봤지만 역시 배리가 움직이는 모양을 흐릿한 잔상 외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전 같으면 보였을 텐데.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브루스는 드디어 클락에게 물었지만, 정말 클락이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클락은 눈에 아주 잘 띄도록  문제의 배터랭 상자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감사하지만 열두 개나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요."


  클락은 고스란히 다시 포장한 상자를 회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무더운 날씨에 클락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곱슬머리가 조금 흘러내렸다. 웨인 파이낸스에 처음 오던 날, 클락은 데일리 플래닛에서 웨인 파이낸스로 오려면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12분의 도보와 두 대의 버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었다. 택시를 타고 오면 되잖아? 하고 물어본 브루스에게 클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택시 비싸요. 회사에 청구하면 되지. 취재 오는 게 아닌데 어떻게 회사에 청구해요?


  클락의 능력 상실이 장기적인 것으로 판명될 경우, 데일리 플래닛과 웨인 파이낸스 사이의 직통 버스 노선을 하나 만드는 데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까? 한 번 뽑아보라고 해야겠어. 또 기획팀에 영문 모를 일거리를 던져 줄 계획을 세우면서, 브루스는 못마땅한 기분으로 더운 기색이 아직 남은 클락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겨우 무더운 날씨 때문에 땀이라니. 슈퍼맨이.


  클락은 브루스 쪽으로 상자를 조금 밀었다.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너무 부담을 드린 것 같아서 나머지는 돌려주려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브루스의 눈이 쭉 찢어졌다.


  "부담? 무슨 부담? 그런 게 나에게 대체 무슨 부담이 돼? 지금 누굴 상대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뱉자마자 브루스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브루스 웨인은 워낙에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진심으로 격렬하게 경멸하지만,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얄팍한 대사는 그 경멸 대상 리스트의 아주 높은 순위에 있었다.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하게 되다니.


  "네?"
  "그런 거 배트케이브에 2500개 있어. 줬으면 제발 군소리 말고 가지라고!"
  "2500개라니."


  또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클락 켄트가 놀라고 감탄한 얼굴로 입을 헤 벌렸다. 아, 제발 신이시여. 크립톤은 관할이 아니실지 모르겠지만 이 외계인 좀 어떻게 해 주소서. 브루스 웨인은 탄식했다.


  "뭐 말이에요? 좀 봐도 돼요?"


  배리가 클락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쏙 들이밀며 물었다. 클락과 브루스가 동시에 황급하게 아니, 하고 말하기도 전에 배리는 이미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상자를 활짝 풀어헤쳐 놓고는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럴 거면서 물어보긴 왜 물어보니, 하고 클락이 중얼거렸지만 배리는 들은 척도 않고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브루스를 흘겨보았다.


  "클락한테 배터랭을 열두 개나 줬어요? 예쁜 상자에 담아 귀여운 빨간 리본으로 묶어서?"

  "그냥 상자고 그냥 리본이야."


  브루스는 악문 이 사이로 대답했다.


  "나한테는 얼굴에다 냅다 집어던졌으면서! 초면에! 인사도 제대로 하기 전에."


  배리가 입술을 쑥 내밀었다.


  "내 얼굴에다 배터랭을 던질 수는 없잖아, 지금의 나한테 그랬다간 난 다시 관 속으로 돌아가야 될 걸."


  웃자고 한 클락의 말에 배리는 정색했다.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요, 클락."
  "농담이야."
  "농담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잖아요. 하나도 재미가 없는 데다, 브루스 기분 나빠진단 말이에요."


  깜짝 놀라서 클락은 브루스의 미동도 없는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표정만 봐서는 브루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배리는 계속 떠들었다.


  "안 그래도 클락이 죽어 있는 동안 브루스는 피투성이가 된 클락이 나오는 악몽을 자주읍읍읍"


  클락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기세로 달려든 백만장자가 지나치게 가벼운 입을 우악스레 틀어막는 모습을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았다.


  "그 따위 루머는 누가 퍼뜨린 거야."
  "다이애나가요!"


  배리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실토했지만, 딱히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배후가 매우 신빙성 있는 인물이자 보복조차 불가능한 인물로 밝혀진 것이 짜증스러운지 브루스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심한 악몽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나는 사악한 존재들을 만났을 때처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지."


  여러 달 전에, 다이애나는 문득 브루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은 싸움과 아주 많은 희생을 본 눈에 걱정하는 기색을 담고. 누구도 그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무엇을 감추는 데라면 도가 튼 브루스 웨인이라도. 브루스 웨인이 껄끄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피하고 싶어하는 화제를 계속해서 이어갈 만큼 강심장인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다이애나 프린스는 분명히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꼭 죽을 필요는 없었어요."


  어둠 속에서, 클락 켄트는 말한다. 공격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얌전한 말투로. 브루스를 찾아올 때마다 하는 말은 조금씩 변하지만, 좌절된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그 입술은 항상 푸르스름했고, 낯빛은 새벽처럼 창백했다.


  "누구보다도 당신이 잘 알고 있죠."


  그는 플레이드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졌지만 원래 구김이 잘 가는 재질은 아니어서 보기에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타이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단추는 단정치 못하게 절반은 풀려 있었다. 활짝 열린 셔츠 속에는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계에서는 다름아닌 희망을 의미한다는 오래된 문장이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은 절반으로 조각나 있다. 깊이 쪼개진 상처에서 피가 계속에서 흘러나와 문장을 적시고, 셔츠를 적시고, 그가 느슨하게 목에 걸고 있던 기자 신분증에 새겨진 선명한 이름도 붉게 물들였다. C. KENT. 데일리 플래닛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어요. 아주, 아주 많았죠.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고 싶었어요.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도, 멸망할 행성을 구하는 것도 좋았고,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훌륭한 글을 쓰고 싶었지요. 페리는 꿈 깨라고 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로이스처럼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이 있는 글을...... 아, 로이스. 로이스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클락 켄트는 미소를 지었다. 치켜올라간 입가에 붉은 피가 고였다가 턱을 타고 가늘게 흘러내렸다.


  "당신은 로이스가 끼고 있는 반지를 봤겠죠? 직접 끼워주고 싶었어요. 반지를 끼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젠 모두 틀렸어요."


  클락 켄트는 속삭였다.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로이스는 꿈에서 나를 보는 일이 없어요. 로이스의 눈은 여전히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있어요. 로이스의 마음은 강인하고, 손은 깨끗하니까요. 그녀의 손에는 내 피가 묻어 있지 않아요."


  나와는 달리. 내 손과는 달리. 브루스는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어둠은 더 짙어진다. 그러나 그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다이애나가 브루스의 단단히 굳은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 백일몽을 쫓아냈다.


  "하지만 진짜 사악한 존재들과 달리 악몽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지. 그건 자네가 만든 것이야, 브루스. 진짜가 아니야."


 다이애나는 낮게 위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알고 있다. 브루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악몽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밤이 되면 자주 찾아왔다. 그 소름끼치는 방문을 끝내는 데는 기적이 필요했다. 우주적으로 대단한, 캔자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이.


  "그래서, 악몽은 이제 끝났어요?"


  기적 같은 존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가 돌아왔으니까, 꿈에서 볼 유령이 없어졌지."


  적어도 클락 켄트의 유령은.


  "다행이네요."


  어린 아이처럼 매일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웠다는 어둠의 기사를 웃어 넘기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클락 켄트는 조용히 말했다. 클락의 얼굴을 본 브루스는 다이애나가 한 말을 이해했다. 지독한 악몽에 사로잡혀 본 사람의 얼굴. 순간적으로 얇아진 얼굴 뒤로 깊고 끈적거리는 회한과 깔죽거리는 자책이 뒤섞인 바다가 얼핏 보였다. 다른 별에서 태어난 이 외계인과 공유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때마다 브루스는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락은 미소지었다.


  "하지만 설령 내가 돌아오지 못했더라도... 그래도 그 일에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요."


  혈색이 도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얼굴로 클락 켄트는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어요."


  브루스 웨인은 꿈에서 여러 유령들을 본다. 그는 잃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 중 상당한 숫자가 나이가 들어서나, 병이나, 사고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로 떠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떤 형태로든 브루스는 그 죽음들에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도, 그래도 그는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결코 도련님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알프레드는 수십 수백 번을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정작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은 알프레드의 말이 맞다고 말해 줄 수 없다.


  직접 그렇게 말해 준 것은 클락 켄트가 처음이었다.


  "맙소사. 정말이지 너는, 사람 구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군."


  브루스가 짧게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짓는 표정을 본 배리는 물리적으로 틀어막혔을 때보다도 훨씬 조용하게 입을 다물었다. 클락도 시선을 돌리고는 배리가 풀어헤쳐놓은 배터랭 중 하나를 집어올려 만지작거렸다. 이것 참 쑥스럽네.


  "초능력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야."


  브루스는 덧붙였고, 그의 눈가에는 가느다란 주름이 졌다. 찌푸리느라 잡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주름이었다. 초능력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야. 그 말은 클락의 가슴을 부풀어오르게 했다. 너에게 한계는 없단다, 그러니 마음껏 시험해 보거라.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 없던 조-엘의 말처럼 클락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말이었다. 마치, 뛰어오르기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보는 이가 하나도 없는 얼어붙은 북쪽의 넓은 황무지가 아니었고, 중력을 마음대로 꺾고 비틀던 클락의 감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설령 돌아왔다고 해도 또 웨인 파이낸스 빌딩의 한구석을 박살내면서 하늘 저 편으로 날아가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부끄러움을 잘 타는 클락은 고마워요, 하고 수줍은 미소를 곁들여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어떻게든 어색함의 빈 공간을 때우기 위해 만지작거리던 배터랭을 배리의 다트판을 향해 가볍게 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배터랭은 공중에서 두어바퀴 돌며 날아갔고,


 퍽, 다트판에 무언가가 꽂히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굉장한 소리가 났다. 깨끗이 만점이네, 하고 배터랭이 족히 절반이나 다트판 한가운데에 푹 파묻힌 것을 본 브루스가 생각했다. 저 정도면 다트판에만 꽂힌 게 아니라 다트판 뒤에 있는 콘크리트 벽에 깊이 꽂혔다고 봐야겠지.


  "아, 이런."


  클락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배터랭이 꽂힌 부분을 시작으로 굵은 금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더니, 결국 정확히 갈라진 다트판의 절반이 힘없이 벽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하지만 배터랭은 쪼개진 다트판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대신 벽에 그대로 깊이 꽂혀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 사람 모두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클락은 배터랭을 던졌던 손을 유심히 내려다보고, 넓은 창을 통해 메트로폴리스의 태양도 잠시 우러러보았다. 돌아온 후로 클락은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만 지금은, 약간 눈이 시큰거리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며 세포를 속속들이 채우는 힘을 찬찬히 느껴 본 클락은, 함부로 말했다가는 겨우 돌아오기 시작한 힘이 놀라 달아나 버리기라도 할까 걱정되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완전한 건 아니야. 조금, 조금 나아졌어."


  그러나 애써 침착하게 말하는 얼굴은 기쁨으로 옅게 상기되어 있었다. 배리는 클락의 조심스러운 말은 깨끗이 무시하고 펄쩍 뛰어 클락을 끌어안았다.


  "정말 축하해요!"
  "아직 조금밖에-."


  그러나 클락은 뭐라고 더 말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트판은 새로 사 줄게."


  한참 만에 웬만큼 평정을 되찾은 클락은 우선 박살난 다트판 주인에게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당연하죠."
  "그리고 저 벽은 어떡하지요."


  클락이 목을 움츠리며 건물주를 돌아보았다.  브루스는 망가진 벽을 힐끗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또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 마음에 걸려 하고 있군.


  "그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아."
  "정말이에요?"


  브루스의 입가에도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슈퍼맨이 벽에 꽂아 놓은 배터랭이라니 제법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이잖아. 액자 테두리라도 하나 구해서 걸까? 제목은 '슈퍼맨의 귀환'이 좋겠어."


  "그러면서 '홀 오브 저스티스' 가지고 내 작명 센스를 놀렸단 말이에요?"


  배리는 이번에야말로 브루스를 마음껏 비웃었고, 브루스는 눈을 좀 흘기기는 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그는 더운 여름 태양이 쏟아붓는 빛 속에서, 숨을 죽인 채 클락과 배리가 내는 웃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가끔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드문 순간은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누리는 것이 좋았다.


 그리하여, 저스티스 리그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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