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는 불길이 솟아오르는 고문실을 들여다보며 한탄했다.
 
 "저기 내 재킷 두고 나왔는데."

 그 외에는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었다. 샌더스와 그 위의 더 높으신 분들은 엉클 루디가 귀중한 입을 놀리지 못하고 영원히 침묵하게 된 것을 아쉬워할지 모르겠지만, 그 분들 심기야 솔로가 알 바 아니다.

 솔로는 신을 믿지 않았고, 당연히 악마도 천국도 지옥도 천벌이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엉클 루디의 최후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세심하게 쌓아올린 것이다. 어리고 별볼일 없던 소년 시절부터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려 여기까지 온 것이지. 그것이 신의 섭리라는 설명보다 더 깔끔하지 않나.

 이제 엉클 루디는 다시는 자기의 작업대에 누구를 눕힐 일이 없을 것이다. 그의 전기 의자는 불탔고, 그의 줄톱과 메스와 펜치와 겸자, 기타 등등 솔로로서는 정확히 이름을 알지 못할 흉악한 것들도 다시는 누군가의 몸을 가르고 피를 낼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게 세상에 큰 손실이 될 거라고는 할 수 없겠지.

 "시간 없어, 빨리 따라와."

 일리야는 불 타 죽은 나치 고문기술자든, 솔로의 알맞게 지어진 재킷이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 쪽을 향해 몸을 휙 돌렸다. 그러나 솔로는 미련을 못 버리고 얼룩진 창을 통해 고문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살아 있을 때나 지금이나 흉칙한 엉클 루디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솔로의 재킷은 얌전하게 반으로 접혀 빈 의자 등받이에 무사히 걸쳐 있었다. 몇 달 전에 런던의 특별히 좋아하는 의상실에서 맞춘 것이었고, 그 재단사는 갓 지어진 옷을 배달하면서 아름답게 장식된 카드를 함께 보냈다. 그 동안 성원을 보내준 데 대한 감사와 함께 은퇴를 알리는 작별 인사가 훌륭한 필체로 적힌 카드였다. 다시는 그 사람의 솜씨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재단사의 마지막 작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솔로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재킷을 구하기 위해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무 예고 없이 닥친 경련 때문에 호되게 혀를 씹고 말았다.

 금속으로 된 문고리에서 격렬한 전류가 튀었다. 손가락 끝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부자연스런 전기 자극에 의해서 심장 박동도 박자가 크게 어긋났다.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고 뱃속이 뒤틀렸다. 솔로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문고리에 손이 닿았던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 끝났다고 섣불리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충격이 심했다. 불 때문에 전깃줄이 끊겼나, 바닥에 물기라도 있었나, 그래서 금속인 문과 문고리에도 전기가 흐르는 것인가. 혼란한 머리로 솔로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오로지 혀를 꽉 깨물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계속 쿵쿵 뛰었다.

 "...내가 가져다 줄게."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귀가 솜으로 틀어막은 듯이 먹먹한 데다가 한 번도 그가 그런 목소리로 달래듯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솔로는 잠깐 동안 누구의 목소리인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리야였다. 당연히 일리야겠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솔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위험한 전류가 흐르는 문고리를 잡아채려는 일리야의 손을 보고 솔로는 피 맛이 나는 혀를 다급히 움직였다.

 "잠깐-"

일리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문고리를 움켜잡아 비틀고는 지옥이 된 고문실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고문실 문이 시원스러운 기세에 몇 번이나 열렸다 닫히며 삐걱거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안에서 새어나오는 홧홧한 열기가 솔로의 뺨을 찔렀고, 솔로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일리야의 뒷모습에 대고 괜찮으냐고 물으려다가, 솔로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혀를 깨물었다.

 물론 괜찮겠지. 괜찮을 것이다. 불이 나면서 이미 한참 전에 방 안의 차단기가 내려갔다. 저 안에는 이제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전기의자에든, 문고리에든, 그 어디에든. 엉클 루디는 죽었고 전기는 끊어졌다. 솔로는 일리야가 재킷을 가져오는 동안 반쯤 열린 문을 다시 한 번 만져 보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문고리는 차갑고 조용했다.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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