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나무 문을 옆으로 밀어 열자, 어둑어둑하게 가라앉은 안쪽 공기가 바깥과는 전혀 다른 냄새를 풍기며 일리야의 얼굴을 감쌌다. 한창 대낮이건만 제대로 된 창도 하나 없이 뿌연 백열등만 몇 개 켜진 엉성한 목재 건물 안에서는 야생 동물들 특유의 누린내가 잔뜩 풍긴다. 바깥보다 덜 춥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늑한 환경이라 할 수는 없었다.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농장 겸 수용소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이 건물은 평소 낡은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창고지만, 이따끔 새로운 짐승들이 들어오는 날이면 '분류장'으로 불릴 때도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아침 일찍 왔다 간 트럭이 한쪽 구석에 부려 둔 커다란 이동장에 야생 은여우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여우 모피는 어떤 색이든 감촉이 좋고 따뜻해서 상등품이지만, 특히 변종인 은여우 가죽은 색이 아름답고 광택이 좋아서 보통 여우 가죽보다 몇 배나 값이 더 나갔다. 수용소의 공짜에 가까운 노동력을 이용해서 여우를 번식시키고 기르면 외화를 벌 수 있다. 자본주의는 밉지만 자본주의자들의 돈은 인민들과 조국에 큰 도움이 된다.


  닭이나 돼지, 소를 기르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여우들은 인간 손으로 사료를 얻어먹는다고 해서 고분고분해지는 법이 없고 언제든 그 사료를 주는 손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짐승들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대접을 받고 사는 이 수용소의 인간들이 언젠가 자기들 껍질을 산 채로 벗길 거라는 점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일리야는 아직 어려서 도살장으로 쓰이는 B동에는 직접 들어가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피곤한 몸과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피냄새를 풍겼다. 자라고 싶지 않아, 일리야는 가끔 생각한다. 물론 일리야도 여우나 토끼, 쥐 같은 작은 짐승들을 잡아 본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B동에서의 무자비한 학살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더 자라면 일리야도 B동에 가서 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도 일리야는 나이에 비해 키가 커서 여우 축사 관리인인 바빌로프보다 눈높이가 한 뼘이나 위였다. 바빌로프가 다리가 짧고 배가 잔뜩 나온 땅땅한 체형을 가진 남자인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는 일리야를 볼 때마다 핑계만 있으면 머리건 등짝이건 배건 가릴 것 없이 후려갈겼다. 그를 비틀거리게 만들어야만 자기가 내려다 볼 수 있으니까.


  일리야는 지난 여름에 열네 살이 되었고, 제대로 먹는 것도 없는데 마치 서늘하고 냄새나는 공기와 희뿌옇게 더러운 물만으로도 거뜬하다는 듯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헛간을 고치거나 무거운 철제 우리를 끌 때면 일리야는 벌써 자기가 대부분의 어른들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것을 알았다. 티를 내 봐야 더 가혹한 노역에만 내몰릴 뿐이니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아직은 축사동에서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과 함께 여우들에게 사료를 주거나 청소하는 일이나 돕고 있었지만, 글쎄, 두 해 정도 지난 후에 일리야에게 어떤 명령이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오늘 일리야가 받은 명령은 익숙한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여우새끼들을 분류하라는 것이다. 축사에서 좀 더 먹이고 키워야 상품가치가 생길 만한 놈들인지, 병들고 가죽이 망가져 쓸모가 없는 놈들인지, 아니면 필요하다면 번식을 시킬 수도, 당장이라도 모피를 벗겨 조국을 위한 외화벌이를 할 수도 있는 상품인지를.


  일리야는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작업용 장갑을 찾아 꼈다. 두께가 일리야의 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되는 튼튼한 장갑이다. 한겨울에도 여벌의 장갑이나 외투를 지급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 수용소지만, 야생 여우를 직접 다뤄야 할 때만은 자비롭게도 아주 두꺼운 장갑을 허용했다. 사나운 야생 여우의 이빨에 꽉 물리면 손가락이 잘려나가기 때문이었다.


  숫자판에 때가 낀 동물용 저울과 백색 가루로 된 소독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일리야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는 동물들로 바글거리는 우리의 무거운 문을 아주 조금만 밀어 열고 가장 먼저 뛰쳐나오는 용감한 녀석의 목을 낚아챘다. 그러자마자 쾅 소리가 나도록 재빨리 문을 다시 닫는다. 이동장 안쪽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반항적인 녀석들이 잠깐 열렸던 문짝에 몸을 부딪치며 캥캥대고 날뛰는 소리가 났다. 힘센 녀석들부터 해치우는 게 나중을 위해 낫다. 그나마 여우라는 짐승이 사납고 교활한 데 비해서는 작고 가벼운 짐승이라 다행이었다. 보통은 중형견 정도의 몸길이였고, 길고 늘씬하게 생긴 체형에 털 부피가 크기 때문에 무게는 생각보다 더 가벼운 편이다. 죽어라고 발버둥치는 몸뚱이를 들어올려 몸무게를 대강 잰 다음 꼼짝 못하게 목덜미를 작업대에 누르고 몸과 털 상태를 살핀다. 그럭저럭 합격점이다 싶으면 옆의 상자에 가득 든 소독약 가루를 집어서 대충 동물에게 뿌리고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다른 인식표를 앞발에 채우고는 새로운 우리로 던져 넣는다.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지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여우 발톱으로 할퀸 자국을 얻게 된다. 일리야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맡은 일을 해냈다. 개중에는 발목이 덫에 채여 반쯤 잘려나간 녀석도 있고, 은여우라기엔 붉은 털이 너무 섞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놈이 있고, 이동장 안에서 저들끼리 싸워 크게 상처를 입고 더운 피를 뚝뚝 흘리는 놈도 있었다. 이런 녀석들은 사료 한 알 주기도 아까워서 붉은 인식표를 달고 곧 폐기된다. 그렇게 상태가 나쁘지는 않아도 막 겨울로 접어든 날씨 탓인지 너무 못 먹어 털에 윤기가 떨어진 놈도 있고, 아직 너무 어린 놈도 있다. 어리거나 깡마른 놈들은 파란 색 인식표를 달고 앞으로 한동안 일리야가 주는 사료를 먹고 지낼 녀석들이었다. 최소한 1년 이상은 되어야 덩치나 털이 완전히 자라서 상품성이 있으니까.


  "눈치껏 하라고."


  이 수용소에서 10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던 레프가 요령을 일러주었었다. 병이 든 놈, 상처가 썩어가서 상품가치가 없는 놈들은 어차피 군인들이 물에 빠뜨려 죽이거나 재미로 과녁삼아 총을 쏠 거야. 눈치껏 굴면 한두 마리 정도는 우리 몫으로 떨어지기도 하지. 들켜도 몇 대 맞으면 끝나, 어차피 버릴 놈들이니까. 대신 벗긴 가죽은 질이 떨어지는 것이나마 잘 두었다가 군인들이나 관리자들에게 기회를 봐서 선물해야지. 괜히 모피 욕심까지 부리면 큰일 나.


  왜 저 바깥의 보통 사람들이 여우 고기를 먹지 않는지 일리야도 경험으로 알았다. 별로 많지도 않은 질긴 살에서 끔찍한 누린내가 풍기기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냄새를 가시게 할 만한 향신료도 전혀 구할 수 없다. 소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기분상으로는 수용소의 깡마른 들쥐나 시궁쥐들보다 조금 낫지만 맛은 쥐고기보다도 못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없으면 가뜩이나 높은 수용소의 사망률은 더 올랐을 것이다.


  소중한 요령을 알려주었던 레프는 작년에 멀쩡한 여우를 빼돌려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 '멀쩡하다니, 어차피 버릴 놈들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봤을 때 레프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정말로 병든 여우 한 마리 먹은 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관리자들에게 밉보였단 게 쌓인 게지.


  이제 분류작업을 하는 것은 일리야뿐이다. 레프가 '아직 애라 그런가 요령도 없고 고지식하네', 하고 평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러나 레프나 바빌로프, 군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요령이 없지는 않았다. 거의 다 죽어가는 여우 한 마리의 목을 부러뜨려 작업대 밑의 더러운 양동이 속으로 숨기면서 일리야는 이를 꽉 물었다.


  기운차게 반항하는 녀석들로부터 시작해서, 일리야를 슬슬 피하는 좀 더 영악하고 골치아픈 녀석들을 거쳐, 소심하게 우리 구석에 처박힌 놈들까지 억지로 끌어내고 나니 일은 거의 끝나 있었다. 이쯤 되니 일리야도 꽤 지쳤다. 허리가 욱신거리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잠깐만 쉴까도 생각했지만 바빌로프는 귀신같이 그럴 때만 등장해서 일리야에게 몽둥이 맛을 보여주곤 했다. 끝까지 하고 쉬자, 일리야는 다짐했다.


  고된 작업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는 어둑한 우리 가장 안쪽 구석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다. 일리야의 긴 팔로도 손이 닿지 않았다. 우리 속으로 함부로 머리부터 처박았다가는 코가 거의 날아가도록 물어뜯길 위험도 있었지만 아무리 우리를 덜컹거리고 쉿쉿 소리를 내도 녀석이 꼼짝하지 않으니 별 수 없었다. 심하게 병들거나 다친 놈이 아닐까? 일리야는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우리 안으로 손을 짚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래도 마지막 여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기색을 살피는 소년과 여우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사람도 여우도 파란 눈이었다.


  파란 눈?


  일리야는 이곳에서 3년 가까이 지냈지만 눈이 파란 은여우는 처음 보았다. 은여우들은 모두 다 적색이 도는 갈색 눈이었다. 놀랍고 신기해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여우는 갑자기 일리야 쪽으로 뾰족한 주둥이를 벌렸다. 날카롭게 한 줄로 난 이빨이 미약한 백열등 빛을 받아서 번쩍이는걸 보고 깜짝 놀란 일리야는 급히 물러나다가 우리 문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여우는 일리야를 물려고 입을 벌린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몸을 일으켜 가볍게 턴다. 가만히 있길래 덫에 다친 녀석인가 싶기도 했었는데, 이제 보니 전혀 불편한 구석 없는 유연한 동작으로 기지개를 켜고는 우리 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일리야는 자세를 잡고 기다렸다가 놈의 목덜미를 낚아채 끌어냈다.


  그래도 녀석은 마치 온순한 새끼고양이처럼 일리야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로 네 다리를 얌전히 웅크리고 가만히 있었다. 발버둥을 치지도 않고, 일리야의 눈을 할퀴어 파내려고 하지도 않고, 머리를 휘둘러 두터운 장갑 위를 부질없이 씹지도 않았다. 그저 일리야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정말 파란 눈이었다. 왼쪽 눈의 홍채 구석에 자그마한 갈색 반점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여우들과 달리 지독한 냄새도 나지 않고, 적당히 포동포동한 몸을 덮은 털가죽은 잘 먹여 기른 것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색에 자르르한 은빛 광택이 돌았다.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지만 어느 귀부인이 아침 저녁으로 흰 우유를 데워 먹여 가며 정성들여 기르던 것을 잘못 잡아온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일리야는 여우가 목에 이름이 적힌 가죽 목걸이라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여우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보았으나 물론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정말로, 예전에 엄마가 무릎 위에서 기르던 고양이를 생각나게 했다. 붉은 비단 리본을 목에 달고, 털빛이 검고 애교가 많았지. 특별한 이름이 없이 그냥 고양이, 키스카라고 불렀었다. 키스카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일리야는 몰랐다. 아마 살아남았다면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모스크바의 길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다. 집고양이라 입맛이 까다롭고 싸움을 모르는 녀석이었으니 사나운 길고양이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먹을 수나 있을까. 잔혹한 어린애들은 도망치는 키스카의 뒤통수를 향해 돌을 던지겠지.


  여우는 풍성한 꼬리를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살랑거렸다. 키스카도 엄마가 아끼던 화초 화분을 일부러 뒤집어 놓기 적전에 그렇게 꼬리를 흔들어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심술궂은 장난기를 매혹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이대로 두면 넌 내일이라도 당장 B동으로 잡혀갈 거야. 어느 미국인 백만장자가 갓 결혼한 젊은 아내를 위해 사 줄 목도리가 되겠지, 키스카."


  일리야는 중얼거렸다. 여우는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약간 모로 눕혔다. 여우는 요물이야. 우리가 손댈 수 있는 건 다 죽어가는 것들 뿐이지. 군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야. 여우들은 사람을 홀린다고. 여우를 잡을 때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안 돼. 쓸데없는 소리를 자주 하던 레프가 그랬었다.


  고민은 짧았다. 일리야는 한 손에 여우를 붙잡은 채로 허리를 숙여 바닥에서 오물이 섞인 더러운 진흙을 한 움큼 쥐었다. 그것을 눈이 파란 여우의 몸에 사정없이 문지르고는 그 위로 소독약을 뿌려주었다. 여우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약가루를 코로 들이마셨는지 크게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일리야도 얼굴에 얼마간 소독약을 뒤집어썼다. 어쨌든 이제 여우는 일리야가 원한 대로 아까보다 마르고 털이 더럽게 엉긴 것처럼 볼품없어 보였다. 이런 취급에 기분 상한 듯이 여우가 어깨를 빳빳이 굳혔지만 여전히 별다른 공격성은 보이지 않는다.


  일리야는 이 여우에 대해 몸무게는 되는 대로 5kg 미만이고, 아직 태어난 지 채 1년이 안 된 것이라고 기록했다. 파란색 인식표를 달고 어린 여우들과 함께 당분간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축사로 보낼 것이다. 어떻게든, 가능한 한, 단 며칠이라도 더 일리야는 이 여우를 살려둘 셈이었다.




율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