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야 태어나서 아직 주둥이가 짧은 어린 여우들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제히 귀를 쫑긋거렸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차가운 초겨울 빗소리를 뚫고 두런거리는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 손수레 끄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곧 성질이 급한 녀석부터 하나 둘 흥분해서 폴짝 폴짝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토끼 고기를 물어 온 정성스런 부모들에게 그러듯이, 배고픈 새끼 여우들은 저급한 개사료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솔로는 잠깐 이를 드러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혐오감을 표시하고는, 곧 다시 꼬리털 속으로 코끝을 파묻었다. 먹는 것이 적으니 최대한 덜 움직여 힘을 아끼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는 그저께 이 축사에 던져진 직후 반나절을 투자해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를 모아다가 푹신한 자리를 만들었다. 심혈을 기울여 코를 벌름거리고 앞발로 조심스럽게 헤쳐 보면서 개중 가장 바싹 마른 것, 더럽지 않은 것들로 몇 시간을 공들여 골랐다. 그랬어도 짚더미에서는 어린 여우들의 젖내 섞인 누린내에 약간의 토사물 냄새, 심지어 배설물 냄새도 희미하게 섞여 났다.


  가장 슬픈 건 엊그제 더러운 진흙을 문지른 솔로의 몸에서도 나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지푸라기 위에 뒹굴며 비벼댔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비가 내려 공기가 축축해지자 악취는 더 심해졌다. 사기로 된 하얀 욕조 가득 넘실거리는 따뜻한 물과 비누거품을 듬뿍 묻힌 솔을 간절히 상상하며, 솔로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꼼짝도 않을 생각이었다.


  이 농장의 다 자란 여우들은 야외에서 철조망으로 된 넓은 우리에 모여 살았다. 겨우 비나 피하도록 지붕만 얹어 놓은 곳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데다 부모와 떨어진 여우들은 동사 위험이 있었으므로 헛간같이 얼기설기한 것이나마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기르고 있었다. 양쪽 벽으로 줄을 맞춰 놓인 큼직한 우리마다 대략 열댓마리의 어리거나 몸이 약한 여우들이 살고 있는데, 인간들은 밤이 되면 띄엄 띄엄 몇 개 안 되긴 해도 어쨌든 난로라고 부를 만한 것에다 불도 피워주었다.


  솔로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조그만 여우들을 싹 무시한 채 자기를 가둬둔 우리부터 유심히 관찰했다. 사방은 물론 위쪽도 막힌 커다란 박스 형태의 철창이다. 여우 걸음으로 짐작해 보면 대략 가로 세로 3m 정도였고, 높이도 웬만한 사람 키보다는 위였다. 여우들이 사납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용소의 굶주린 사람들이 여우를 훔칠 것을 걱정해서인지 하나뿐인 문은 허술한 걸쇠가 아니라 자물쇠로 꼼꼼하게도 잠겨 있다. 바닥도 앞발로 팔 수 없도록 흙바닥이 아니라 마룻바닥이었다.


  쉽지 않겠네.


  하긴 솔로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쉽지 않은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이 손바닥 만한 여우 우리보다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전후 처리를 놓고 소비에트 연방과 미합중국이 매사 대립중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둘은 때로는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안건을 놓고 으르렁거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상대방을 견제하려는 요량으로 별 것 아닌 일도 일단 한 쪽이 찬성하면 다른 쪽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식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연합이 깨지지는 않았으나 전후의 패권을 쥐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는 건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위조된 여권으로 소련에 들어온 미국인이 당국에 잡혔다가는 곱게 돌아가기 힘들 것이다. 보안위원회 요원들이 찾아온 걸 깨닫자마자 솔로가 냉큼 여우로 변해서 제 목숨을 챙기기로 결정한 건 당연한 계산의 결과였다. 아무런 국적도 소속도 없는 작고 재빠른 짐승일 경우에 살아남아 도망칠 확률이 높으리라는 계산.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결국 빠져나가기 전에 잡혀 버렸다. 수상한 미국인을 체포하러 온 KGB 요원들은 고스란히 버려둔 짐들과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옷가지 일습, 아직도 따끈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커피잔, 무엇보다도 카펫 위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웬 여우 한 마리를 보고 좀 헷갈려 하기는 했다. 하지만 표적으로 했던 사람이 이미 사라진 것을 어쩌겠나. 그들은 사람을 잡는 데나 전문가였지 짐승 가죽 벗기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던지, 아니면 그저 귀찮았던지 근방에 있는 국가 소유의 여우 농장에 솔로를 보내 버리고는 교활하게 도망친 미국인을 계속 좇기로 했다.


  솔로는 조금 안심했었다. 하하, 모진 KGB에 비하자면 농장 일꾼들 속여넘기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 일꾼들이 고된 일과를 마치고 밤에 보드카 한 병을 딸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렸다가 모두 잠든 밤 사람으로 변해 걸쇠를 열면 간단할 것이다. 패닉 상태에 빠진 여우들과 함께 이동장에 던져진 후에도 솔로는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팔자에 참 꿈도 야무졌지.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놈의 농장은 수용소의 불행한 인력을 값싸게 부려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인지라 경계도 보통 농장급이 아니라 수용소급이었다. 돈도 옷도 없는 신세로 갇혀서 언제 가죽이 벗겨질지 모른다니. 먹으라고 주는 건 개 사료에다 뿌연 물 뿐이고.


  와르르, 가장 끝에 있는 우리부터 더러운 사료통에 사료가 퍼부어지는 소리가 났다. 몰려든 여우들이 빽빽 소리를 내면서 서로 어깨를 치고 뛰어오르며 조금이라도 자리를 더 확보하려고 아우성치느라 소동이 일어났다. 솔로는 한쪽 눈만 뜨고 그 우스운 꼴을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아, 따뜻한 보르쉬 한 사발만 들이켰으면 소원이 없겠네.


  인간들은 사료를 다 배급한 후 여우들이 마음껏 먹는 사이 마룻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물론 인간들이 다니는 바닥 말이다. 여우들이 들어있는 우리는 얼마에 한 번 청소하는지, 이틀 전에 들어온 솔로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인간들은 녹슨 난로에서 밤새 탄 재를 긁어내 양동이에 담아 내가고, 빗자루로 바닥을 부지런히 쓸어낸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죽거나 병들거나 다친 여우가 없는지도 살피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 유독 낯이 익은 커다란 어깨가 보이자 솔로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 속에 꾹꾹 쑤셔넣은 덩치만 보면 다 자란 어른 같지만, 돌아설 때의 얼굴을 보면 형편없는 애송이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리야라고 부르는 금발 머리 어린애.


  그래도 저 애는 일부러 솔로를 생각해서 그나마 어린 여우들이 있는 조금 나은 환경으로 보내준 게 틀림없었다. 덕분에 아직 모피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았으니, 갑자기 끌려나가 살가죽이 홀딱 벗겨질 염려가 없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솔로는 여기 있기에는 나이가 좀 많았지만 저 꼬맹이가 솔로의 은근한 애교에 넘어가 월권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진 게 딱히 없는 인생인지 여우생인지가 조금이나마 편해지는지 솔로는 잘 알았다. 사람일 때나 여우일 때나 기본은 마찬가지다. 예쁜 얼굴로 예쁘게 구는 거지. 솔로는 예쁜 것에는 날 때부터 항상 자신이 있었고, 예쁘게 구는 것도 자존심만 조금 꺾으면 어렵지 않았다.


  솔로가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빗자루를 멈추고 잠깐 허리를 편 일리야가 솔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우성치며 아귀아귀 사료를 집어삼키는 어린 여우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둘러보다가 마침내 구석진 곳에 오도카니 자리를 잡은 솔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불그레한 뺨과 파르스름한 눈에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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