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가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본 솔로는 눈치빠르게 짐작했다. 게으름 피운다고 발길로 걷어찰 만한 책임자들이 근처에 있는지 살피나 보군.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일리야는 빗자루를 한 손에 쥔 채로 솔로가 있는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같은 우리에 있는 작은 여우들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의 기척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철창이 가로막고 있는데다 지금은 먹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다들 일리야를 무시하기로 한다. 솔로도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소년을 모르는 체 했다.

 "키스카."

 일리야가 목소리를 낮춰서 불렀다. 듣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낮은 목소리였다. 제법 다정한 투였지만, 솔로는 고양이가 아니었으므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왜 저렇게 부르는지 알 수가 없다. 따지고 들자면 여우는 개과인데.

 "왜 사료를 먹지 않지?"

 너 같으면 먹겠냐. 솔로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여우의 성대와 구강구조로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답답하지만 별 수 없지. 그리고 아마도 여우가 되면 복잡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 역시 조금은 무뎌지는 것 같았다. 성격이 사람일 때보다 살짝 무던해진다고 할까, 그리고 사람일 때보다 멍청해지기도 하지. 이렇게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민첩하게 머리를 굴릴 의욕도 별로 들지 않았다. 사람일 때라면 바닥을 조금 깔짝거리고 철창을 조금 흔들어 본 다음 금세 안 되나보다 하고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여우로 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일단 여우가 되고 나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

 "사료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디가 아픈 거야?"

 일리야는 계속 물었다. 마치 솔로가 대답을 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제도 그제도, 여기 온 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 그러면 오래 버틸 수 없어."

 일리야는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굴렀다. 행동은 여우새끼들만큼이나 어린애 같았지만 덩치가 하도 커서 낡은 나무 바닥이 쿵쿵 울리는 게 느껴졌다.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솔로를 초조하게 쳐다보던 일리야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서 모두 제 할 일에 열심이고 여전히 관리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람. 궁금해진 솔로가 딴청 부리기를 그만두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관찰하는 가운데, 일리야는 슬쩍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사람일 때도 호기심이 적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여우일 때는 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지라, 솔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소년의 손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보라, 마침내 다시 나온 손에는 다름아닌 빵조각이 쥐여 있는 게 아닌가! 끼니를 때우기에는 형편없이 조그만 데다가 말라붙어 딱딱해 보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솔로는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바짝 들고 말았다. 이런. 너무 크게 관심을 보였잖아. 나도 모르게 그만. 여우일 때는 속마음을 감추는 것도 훨씬 어려워진다.


 먹을것을 본 여우 뱃속에 조그만 불이 붙은 것 같은 허기가 느껴졌다. 여우는 몸집이 작은 만큼 부피에 비해 체표면적이 넓고 신진대사도 활발하다. 보기보다 제법 많이 먹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며칠이나 내리 굶었으니.

 "그래, 그래. 이건 마음에 들어?"

 솔로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기쁜지, 아까보다 화색이 도는 목소리다. 솔로는 조금 망설였지만 일리야가 철창 틈으로 좀 더 빵을 들이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일리야는 끈기있게 빵조각을 내밀고 조금씩 흔들어 보이기까지 하며 기다렸다. 솔로는 꼬리를 늘어뜨린 채로 슬슬, 일직선이 아니라 애매한 갈지자로 일리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 빵이 어디서 나왔을까? 수용소 근처에는 빵집 같은 것이 없다. 있는 거라곤 저쪽 다른 건물에 있는 수용소 주방 뿐이지. 시들어가는 채소와 돌가루 섞인 저급 밀가루, 시퍼렇게 된 감자, 연골과 못 먹게 생긴 기름으로 뭉친 짐승 시체들을 재료로 해서 고문 도구에 가까운 음식들을 만드는 곳.

 그래도 개사료보단 낫다. 개사료보다 조금 나은 그런 음식들로 이 사람들은 몇 년이고 버틴다. 한창 자라는 소년에게는 양도 영양도 열량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음식들이지만. 언제나 배가 고프겠지.

 그런 것을 일리야는 한 조각이나마 남겨서 솔로에게 가져왔다. 솔로가 어제도 그제도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을 눈여겨 보고. 그것을 생각하자 여우의 무딘 감정으로도, 뱃속을 훑던 허기와 만사 귀찮던 짜증이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누그러졌다. 솔로는 달라진 기분으로 이제는 빵보다도 일리야의 반듯하게 곱상한 얼굴을 좀 더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입꼬리가 기대감과 기쁨으로 조금 올라가 있는 얼굴을. 그래, 괜찮아. 이리 와. 일리야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껑충하게 짧은 소매 끝에 튀어나온 마른 손목이 흔들렸다.

 솔로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철창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일리야의 입가에 걸린 웃음도 조금씩 커졌다. 이제 일리야가 빵조각을 철창 사이로 살짝만 던져도 솔로가 충분히 받아 먹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는데도, 그는 솔로가 조금 더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일리야 쿠리야킨!"

 그러나 누군가가 벼락처럼 소리쳐서 산통을 다 깼다. 깜짝 놀란 솔로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젖히고 흠칫 뛰어 물러나며 몸을 잔뜩 낮추었다. 여우가 되면 본능적으로 겁도 더 많아진다. 바닥을 쓰는 소리, 삐걱대는 난로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 사료 굴러다니는 소리, 심지어 여우들이 깽깽대는 소리까지도 확 조용해졌다. 솔로는 그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이 새끼여우 축사의 권력자임을 짐작했다. 성량이 마치 바리톤 가수 같군.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사람이고 말야.

 일리야도 눈에 띄게 놀라면서 고개를 돌렸고, 거의 동시에 그의 높은 이마를 향해 서류판이 날아왔다. 딱딱한 모서리가 일리야의 이마를 사정없이 때리고, 그 충격에 서류판에 끼워져 있던 종이들이 사방으로 날리는 것까지 본 솔로는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재빨리 지푸라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솔로가 다시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었을 때, 일리야는 얻어맞은 이마를 감싸쥘 생각도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흩어진 종잇장들을 주워모으는 중이었다. 배가 튀어나온 늙은 남자는 쉴새없이 일리야에게 험악한 말을 퍼붓고 있다. 솔로는 모국어가 아니라도 러시아어를 잘했지만, 외국인이 책으로는 좀처럼 배우기 어려운 종류의 심각한 욕설들이 사나운 소낙비처럼 후둑후둑 쏟아져 정신이 없었다.

 일리야가 부질없이 떨어뜨린 빵조각은 바닥을 나뒹굴다가 길길이 날뛰는 늙은 러시아 남자의 구둣발에 밟혀 시커멓게 납작해졌다. 결국 일리야가 귀를 붙잡혀(자기보다 한참 작은 남자에게 귀를 잡혀주느라 길다란 몸이 잔뜩 숙여졌다) 끌려가는 것까지 보고, 솔로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울적해져서 코끝을 꼬리 아래로 묻고 몸을 옹송그린 원래 상태대로 돌아갔다. 끔찍하게 배가 고팠다.

 설마, 아무리 수용소라지만 어린애가 아침 일과 중에 딴청 좀 피웠다는 게 총살 당할 죄는 아니겠지. 빈약한 아침 식사를 조금 남겨서 짐승에게 주는 게 채찍질 당할 죄는 아니겠지. 솔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리야는 하루종일, 저녁 사료 배급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와서 저녁 일을 하는데 일리야만 없었다. 초겨울답게 이른 어둠이 내리자 사람들은 손수레에 끌고 온 나무 땔감을 삐걱대는 난로에 집어넣어 불을 피웠다. 주위가 조금씩 조용해지고, 어린 여우들이 하나둘 사과 궤짝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보금자리에 틀어박혀 잠을 청할 때도 솔로는 그대로 지푸라기 위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귀를 세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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