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일리야."


솔로는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마치 지나치게 흥분해서 꼬리를 치며 뛰어오르는 애견을 진정시킬 때 쓸 것 같은 투였다. 솔로는 개를 기른 적이 있을까? 아니면 고양이를 더 좋아할까? 어울리기는 고양이가 더 어울리지만, 폴짝 폴짝 뛰어오르는 커다란 개를 귀엽게 여기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솔로의 모습도 보고 싶다. 요즘 들어 솔로에 관한 아주 사소하고 전혀 쓸모없는 정보들이 무한대로 궁금해진 일리야는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안 돼, 일리야. 정확하게 발음된 짧은 말과 함께 솔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일리야의 입술을 따스하고 달콤하게 간지럽혔다. 둘의 입술은 그 정도로 가까웠고, 일리야는 우선 그 숨결을 굶주린 사람처럼 게걸스레 들이마신 후에야 물었다.


"안 된다니?"


"말 그대로 안 된다는 거야."


달리 해석할 여지 없는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동안 솔로의 몸은 입술 외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등받이가 높은 윙체어에 깊숙이 앉아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여전히 일리야와 서로 얼굴 전체를 보기 어려울 만큼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일리야가 아무 맥락 없이 솔로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게 된 건 아니었다. 어른 대 어른으로 충분히 자연스러운 교감 끝에 이럴 만한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했으니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안 된다니, 일리야는 이 변덕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스파이가 또다시 무언가 게임을 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내 그랬듯이.


솔로의 게임은 어느 정도는 의도적이고 또 어느 정도는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끼어들어 완성되는 것이었다. 베를린의 체크 포인트에서 일리야가 관찰하고 있음을 알고도 모르는 척 했던 것은 일리야를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는 오만한 천성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일리야가 솔로를 완전히 놓치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추적 장치를 내버려 둔 것은 솔로도 그 추적장치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일리야의 손 안에 반쯤 들어왔다가 도망쳐 나간 것은 솔로의 재주겠지만 처음부터 일리야를 지뢰밭에 위험하고도 치욕스럽게 떨구어 놓을 작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련 없이 일리야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려는 듯 하다가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물에 던져 일리야를 구해 주었듯이, 위험한 순간에 일리야에게 총알 대신 시계를 선사했듯이, 솔로가 주도하는 게임은 우연과 필연, 솔로의 심술궂은 장난기와 예상치 못한 즉흥적인 호의들이 섞인 것이었다. 둘은 줄곧 짓궂어 보이지만 진짜 악의는 없는, 도망치고 밀어내다가도 갑자기 돌아서서 손을 내미는 식의 게임을 해 왔다.


일리야는 이런 게임에는 완전히 초보였지만 넌더리를 내면서도 그만 둘 수 없게 빠져들었다. 그래도 가끔 스텝이 엉키고 비틀거리기는 할지언정 아주 뒤떨어지지는 않고 솔로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편 아닌가, 하고 일리야는 생각했다.


솔로가 앉은 윙체어의 두 팔걸이에 손을 짚은 채, 허리를 잔뜩 숙여 눈높이를 맞춘 일리야는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꺾어 솔로와 마주보고 있다. 사실은 '마주본다'는 중립적이고 단정한 단어로 묘사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깝지. 갑자기 솔로가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에 일단 멈춰 있었지만, 둘의 사이는 센티미터 단위로 재도 숫자가 크지 않을 만큼 가까웠고 직전까지도 계속해서 그 거리를 좁히는 중이었다.


호흡의 리듬마저 맞아들어가며 두 사람의 숨이 섞이고, 일리야는 도저히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개를 작게 갸웃거렸다. 의문을 표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사실은 닿을락 말락 하던 코끝을 부빌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정말로 닿고 싶은 것은 입술이었지만 일단 안 된다고 했으니까, 일리야는 가장 거리가 가까운 높은 코끝을 애교있게 작은 홈이 패인 솔로의 코끝에 스쳤다. 정말 피부끼리 닿은 것인지 아니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솜털이 서로의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살짝. 그러자 솔로는 숨을 들이쉬며 눈을 나른하게 감았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안 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데."


"자네 영어가 형편 없는 것이야 알고 있지만, 안 된다는 말조차도 어렵나."


눈을 뜬 솔로는 살며시 목을 틀었고, 감질나게 겨우 붙었던 둘의 코끝은 다시 떨어졌으며, 일리야의 입술은 이제 그대로 다가가면 솔로의 입술이 아니라 입가와 귓가의 사이 어디쯤엔가 떨어지게 될 것이었다.


"여기서 좀 더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자네가 무엇을 할 셈인지 정확하게 알 수야 없네만, 어쨌든 고려해야 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따지는 게 많은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아직도 솔로가 무언가 장난을 치려 한다고 생각한 일리야는 가볍게 웃었다.


"자네 말이 맞아. 이런 상황에서 보통 나는 그다지 따지는 게 없다네, 기껏해야 가장 가까이 있는 침대가 충분히 푹신하고 깨끗한지 정도일까."


솔로는 또다시 자제하지 못하고 재치를 부렸지만, 이 말이 무엇을 연상시켰든 그로 인해 팔걸이를 쥔 일리야의 손에 자기도 모르게 더 힘이 들어가고 호흡이 빨라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쓸 데 없는 암시는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이건 아주 드물게 있는 특수한 케이스라."


일리야는 멈칫했고,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다. 여전히 점잖은 대화 상대방 사이로 권장할 만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일리야는 솔로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자네 기준에서 특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오해인가? 지난번 작전에서는 에스토니아 대사관 참사관과......"


"자네가 남자인 것과는 상관없어."


솔로는 딱 잘랐다.


"러시아인인 것도 상관없고."


일리야는 다시 조금쯤 누그러졌다.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이유 때문에 거부당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으니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괜찮다. 솔로 때문에 각도가 어긋나 버린 입술을 다시 찾아 머리를 움직이며 그는 속삭였다.


"그럼 뭐가 문제지?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네가 뭐라 말하든, 혹은 말하지 않든, 너도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걸 안다. 그런 이상, 다른 문제는 무엇이든 금방 고칠 수 있지."


솔로는 탄식했다.


"자네가 이렇게나 로맨틱한 사람인 줄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조금 헷갈리는 말투기는 했지만, 일리야는 이것을 일단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샴페인 덕분인지 무엇이든 유리하게 해석할 용기가 있었고, 허세를 부릴 여유도 났다.


"그래서 내가 싫은 거라면, 싫다고 분명히 말해라. 받아들이겠다. 어차피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네 말처럼 나는 로맨틱한 사람이니까 아무리 너라고 해도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자네는 거짓말을 하기 어렵도록 만들어. 솔로는 이미 방금 전에 그렇게 시인했다. 이번 작전에서 일리야는 혼자 적에게 쫓기던 중에 통신기기를 다 망가뜨린 채 위험한 삼림 지대에 고립되었다. 탈수 증세는 좀 있지만 대체로 멀쩡한 상태로 구조되어 마침내 다시 만났을 때, 솔로는 그 며칠 동안 일리야보다 잠을 더 못 자고 더 못 먹은 사람처럼 초췌한 얼굴이었다. 처음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기회만 있으면 말다툼을 하고 서로를 짓궂게 놀려댄 두 사람이었고, 그 때 솔로가 지은 표정은 분명히 그런 기회 중에서도 보기 드문 절호의 기회라고 할 만큼 우스꽝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일리야는 처음 보는 그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일리야가 새삼 그것을 구실 삼아 솔로를 놀릴 만큼 진정이 된 것은 건강 검진과 지루한 보고를 마치고 한밤중이나 되어서였다. 두 사람이 솔로의 방에서 무사 귀환 기념으로 비싼 샴페인을 한 병 따고도 꽤 시간이 흐른 뒤다.


"그 때 자네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거울로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


질 좋은 알코올로 기분이 녹은 일리야가 웃음기 묻어나는 목소리로 놀렸다.


"아주 어린애처럼 엉엉 울겠던걸."


이 치욕적인 평가를 듣고, 솔로는 예상외로 뾰족한 말로 받아치는 대신 이상하게 커다랗게 뜬 눈으로 일리야를 잠자코 쳐다보았다. 놀란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그 무엇도 아니라 솔로가 일리야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인지, 일리야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을 끄는 표정이라는 것은 분명했고 일리야는 더 이상 놀리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함부로 입을 뗐다가 그 표정이 금세 사라질까 벌써부터 아쉬웠다. 솔로는 그런 얼굴로 말했다.


"두려웠으니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차리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박동이 빨라지면서 아래로 피가 몰리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날까지 예상 외의 상황이나 느닷없는 말 한마디 때문에 성적 충동을 느낀 일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이성적으로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두려웠다는 고백은 물론 대단한 의외이긴 했지만, 그 말의 무엇이 방아쇠를 당긴 것인지 아직 뇌는 알지 못했고, 일리야는 당황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놀라지, 바른 대로 말하는 내가 낯설어서 그래?"


솔로는 웃었다.


"가끔 말이야, 자네는 거짓말을 하기 어렵도록 만들어. 어제 저녁쯤부터는 정말 자네를 잃는다고 생각해서 그랬네. 자네가 너무 늦기 전에 멀쩡히 발견된 건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었잖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일리야의 뇌 역시 심장보다 한 박자 늦게, 더 이상 거리를 재고 서로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사실은 이 날 이전부터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일리야는 쥐고 있던 글라스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다리를 꼰 채 윙체어에 파묻힌 솔로의 손에서도 잔을 빼앗고, 의자의 양 팔걸이 위를 짚은 채 -그러지 않으면 그 손으로 아직 이 단계에서는 너무 지나치다 싶은 행동을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으므로- 솔로의 몸 위로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다.


"우선은, 자네가 거의 죽을 뻔하다가 구조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지. 아직 심신 상태가 정상이 아닐 거야, 너무 들떠 있어. 이럴 때 후회할 행동을 하면 안 되네."


일리야는 신음했다. 말의 내용이야 참으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신사답지만 그 말을 뱉은 사람이 솔로인 것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폴레옹 솔로가 후회할 행동 따위를 운운하다니 너무 설득력이 없다."


단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 위해 호텔 바에서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을 방으로 데려오는 일은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어야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않나. 솔로의 여러 나쁜 버릇을 목격하거나 눈치챌 때마다 느끼던 뾰족하고 거슬리는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제 일리야는 확실히 알았다. 스스로도 부당하고 주제넘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조그마한 원망, 질투였다. 그러나 지금은 새삼 그런 감정을 되살릴 때가 아니었다. 그런 문제는 차차 합의점을 찾아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일리야가 그런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는 위치를 확실하게 차지하고 나면, 저 뻔뻔한 솔로도 전처럼 제멋대로 굴 수는 없겠지. 그러나 어쨌든, 아직은 마음껏 제멋대로인 솔로가 말했다.


"그리고 자네 말마따나, 자네는 너무 로맨틱하고 나는 너무 변덕이 심하지. 최악의 조합이야."


"최악인지 아닌지 한 번 시도는 해봐야잖아?"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였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지만, 말하느라 움직이면서 조금 내밀어진 일리야의 입술이 솔로의 것에 살짝 닿았다. 놀라고 긴장한 듯이 솔로의 목이 뻣뻣하게 굳었고 그러느라 입술이 다시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일리야는 꼭 그만큼 따라갔다. 팔걸이를 짚었던 손을 들어 솔로의 뺨과 귀를 감싸고, 뒤로도, 옆으로도, 더는 도망칠 수 없게.


솔로는 얕게 신음했는데, 불쾌감이나 거부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음이었다. 일리야는 아주 얇은 피부 아래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솔로의 아랫입술을 빨아들였다. 처음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그러나 점점 더 강해지도록. 강하게 빨아들이고, 빨려들던 입술이 결국 짧게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솔로가 헐떡였다.


"일리야, 일리야......"


솔로가 조금 일그러진 발음으로 애원하듯 일리야의 이름을 불렀다. 혹시나 그 끝에 붙어 나오는 것이 또다시 안 된다는 말일까 싶어, 그 이름 끝을 허겁지겁 삼키듯 일리야는 이번에야말로 정확히 솔로와 입을 맞추었다.


드디어 일리야는 솔로의 몸 안쪽에 속하는 부분을 처음으로 겪어 보았다. 답지 않게 당황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솔로의 혀는 부드럽고 샴페인 맛이 났다. 미끈거리는 점막과 못되게 생긴 치열을 훑고 입 안의 아주 여린 부분, 천장의 조금 단단한 부분, 혀 아래의 굵은 핏줄이 지나고 달착지근한 물기가 솟는 은밀한 부분을 모두 다 훑었다. 마치 십대 시절 같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건드려 보고, 문질러 보고, 핥았다가 빨아 보고, 강도를 조금씩 달리 하여 질리지도 않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조금씩 다른 맛과 다른 감촉이 났고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는 동안 일리야의 손은 감싸고 있던 솔로의 얼굴에서 내려가 탄탄한 목을 한 번 쓰다듬고, 어깨 너머로 돌아내려가 허리를 감쌌다. 넓은 등과 허리에 댄 손에 힘을 주어 앉아 있던 솔로를 끌어당기며 반쯤 들어올리다시피 하자, 솔로의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둘의 가슴이 바싹 붙었다. 여전히 얄밉도록 셔츠와 베스트까지 챙겨 입은 가슴이었지만 옷 너머의 근육의 모양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때 솔로의 손이 일리야의 양 뺨을 단단히 감쌌다. 그만큼 두 사람이 닿아 있는 면적이 늘어났고, 일리야는 조심스럽게 시험하고 탐구하던 것을 집어치우고 무턱대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세게, 깊이, 더, 더. 그러나 솔로의 손은 일리야를 당기려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려고 했다. 네 그 지긋지긋한, 진저리나게 매혹적인 게임, 하고 일리야는 욕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더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싶은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일리야."


입술이 조금 떨어지자마자 잠깐도 참지 못하고 다시 붙이려고 드는 일리야의 얼굴을 단단히 감싸쥔 채 솔로는 말했다. 일리야는 불만스러운 콧소리를 냈지만 솔로가 하자는 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이가 조금 멀어지자 솔로의 양 뺨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보였다. 잔뜩 시달린 입술이 부푼 것과, 느슨하게 해 둔 타이와 단추를 딱 하나 풀어 둔 셔츠깃 아래로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것도. 그냥 쳐다보기만 하기엔 꽤 자제력이 필요한 광경이었다. 둘 다 한참 동안 숨을 제대로 쉬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어떻게 생각하지?"


마침내 일리야는 물었지만, 솔로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뭘 묻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한 번도 일리야가 본 적 없는 아득하게 몽롱한 눈이었다.


"최악일 것 같다며."


그제야 솔로는 눈을 조금 바로 떴지만 그래도 여전히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최악이라고 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지만 차마 그런 매정한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일리야는 더욱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안 돼."


솔로는 달아오른 뺨에 나른한 눈매, 온통 젖은 입술을 한 채로 그렇게 말했다. 표정과 눈빛과 몸짓이 보이는 모든 표지가 일치하는데도 오직 말의 내용만이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나머지 일리야는 물었다. 아니, 이건 너무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의 항의에 가까웠다. 그래도 솔로는 고개를 내저었고, 어리둥절하고 좌절한 일리야가 놓아 주자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채 잊혀져 가던 샴페인 잔을 찾았다. 그 손끝이 침착하지 못하고 조금 떨리고 있는 것을 보는 일리야는 더욱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샴페인 잔을 집어 조금 미지근해져서 맛이 별로인 액체를 입 안에 털어 넣고 키스의 남은 맛을 억지로 씻어내며 솔로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리야는 최선을 다해서 참고 기다렸다.


"있잖아, 일리야."


솔로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상에 내가 절대로 같이 자지 않는 딱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


"대체 그게 뭐야?"


"첫째는 술 마실 나이가 안 된 애들이고."


거기엔 아무 이의가 없었으며 자신에게 해당 사항도 없었기 때문에 일리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동료야."


일리야는 잠깐 무어라 반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 솔로가, 직업 윤리 같은 걸 지킨다고?"


"직업 윤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원칙이 그래. 내가 인터폴에 체포된 게, 당시 애인이자 공범이기도 했던 사람의 밀고 때문이었다는 걸 다시 말해 줘야 하나? 공사 양면으로 많은 걸 공유하게 되면 일이 복잡해져. 난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이고."


솔로는 이때쯤 해서는 평소의 호흡 속도를 되찾았다. 그 배신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솔로의 머리와 마음은 방금 전에 그렇게나 달떠 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순식간에 차고 단단하게 굳었지만, 일리야의 마음은 더욱 철렁했다. 솔로가 가엾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다는 얼굴로, 이번엔 일리야는 온 몸으로 솔로를 내리누르는 대신 몸을 낮추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솔로를 올려다 보았다. 조심스레 내민 손이 손잡이 위에 놓이 솔로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절대, 절대, 절대로 그런 일 없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아."


일리야는 말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하게 진심처럼 들렸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그 때의 쓰디쓴 배신보다도 더 솔로의 가슴을 참혹하게 후벼팠다. 겨우 되찾은 냉정이 다시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솔로는 일리야의 눈을 피하고 미지근해진 샴페인을 한 모금 더 마시려고 했지만, 이미 아까 키스의 여운을 지우느라 다 마셔 버려서 남은 것이 없었다. 새로 따를 기운도 없고, 젠장.


"넷째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라도 상관 없네. 그 반지가 25년 된 거라도 괜찮아. 살인범이어도 상관없고 적이라도 괜찮지."


솔로는 손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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